
스페인 북부는 건축과 자연, 음식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특별한 여행지입니다. 세계 3위의 와인 생산국다운 리오하의 와이너리부터 미식의 도시 산 세바스티안의 핀초스 골목까지, 감각을 자극하는 풍경이 끊임없이 펼쳐집니다.
리오하의 와이너리 투어, 건축과 포도밭이 만든 성전
리오하 지역을 대표하는 와이너리 투어의 출발점으로 빠지지 않는 곳이 바로 보데가스 이시오스입니다. 물결 모양의 지붕에 삼나무와 유리로 이루어진 이 건물은 와인 저장고이자 와인 박물관으로, 포도밭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산과의 조화가 방문객의 탄성을 자아냅니다. 건물 자체의 조형미도 인상적이지만, 자연과 건축이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기는 순간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예술적 경험으로 다가옵니다.
그 옆에는 또 하나의 걸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와인 대기업 마르케스 데 리스칼이 조성한 복합 와인 문화 공간입니다. 이 건물은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작품으로, 다양한 빛깔의 포도밭과 어우러진 최고의 명소로 손꼽힙니다. 덕분에 와인 제조 시즌인 9월 말에서 10월 초뿐 아니라 연중 내내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습니다.
와이너리 투어의 핵심 중 하나는 와인 제조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상큼한 포도 향기를 따라 이동하다 보면 스페인을 대표하는 리오하 지역 특유의 템프라니요와 가르나차 포도로 와인이 만들어지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오랜 세월을 지켜온 지하 와인 저장고에는 무려 400만 병 분량의 와인이 숨 쉬고 있어, 그 규모에 압도당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더 오래된 저장고로 향하는 비밀 창고 같은 문이 열리는 순간, 마치 동굴 속에서 시간이 멈춘 채 와이너리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박물관처럼 느껴집니다. 19세기 와인 저장고와 21세기 와인 판매장이 공존하는 이 공간은, 전통과 현대 와인을 한자리에서 모두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투어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실제 여행자 관점에서 보면, 와이너리 투어는 사전 예약이 권장됩니다. 마르케스 데 리스칼의 경우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투어 및 시음 프로그램을 사전 예약할 수 있으며, 투어 종류에 따라 가격대가 다양합니다. 일반적으로 기본 투어는 1인당 15~25유로 수준이며, 프리미엄 시음 패키지는 50유로 이상으로 구성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음장에서는 산지에서 직접 생산된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어, 특별한 기념품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습니다.
리오하 와인의 품격, 템프라니요와 오크통 숙성의 깊이
스페인은 세계 3위의 와인 생산국으로, 그 중심에는 리오하 지역이 있습니다. 리오하 와인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두 가지 핵심 포도 품종은 바로 템프라니요와 가르나차입니다. 템프라니요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적포도 품종으로, 체리와 자두 같은 과실향에 흙 내음과 스파이시한 풍미가 더해진 복합적인 캐릭터를 가집니다. 가르나차는 풍부한 과일향과 높은 당도로 와인에 부드러움과 균형감을 부여하는 품종입니다. 이 두 품종의 조화가 리오하 와인만의 독특한 깊이를 만들어냅니다.
리오하 와인의 또 다른 특징은 오크통 숙성 기술에 있습니다. 스페인 와인에 있어 오크통 숙성 기술의 도입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 역사적 전환점이었습니다. 장기 숙성 방식을 통해 와인에 복합적인 향미와 구조감을 더하는 이 기술은, 리오하 와인이 국제 무대에서 고품질 와인으로 인정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오크통에서의 숙성 기간에 따라 크리안사(최소 2년), 레세르바(최소 3년), 그란 레세르바(최소 5년)로 등급이 나뉘며, 각 등급은 와인의 깊이와 복잡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마르케스 데 리스칼을 비롯한 리오하의 주요 와이너리들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오크통 숙성에 대한 철학과 집념이 있습니다. 지하 와인 저장고에서 수십 년간 오크통 속에서 숨 쉬어온 와인들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시간의 예술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행자 입장에서 리오하 와인을 가장 잘 경험하는 방법은 와이너리 시음 투어에 참가하는 것입니다. 투어를 통해 와인 제조 과정을 직접 보고, 전문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오크통 숙성 와인부터 현대적 스타일의 와인까지 다양한 빈티지를 비교 시음할 수 있습니다. 시음장에서 구매하는 와인은 국내 유통 가격 대비 합리적인 경우가 많으므로, 여행 예산을 미리 계획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레세르바 등급 이상의 와인을 산지에서 직접 구매하는 경험은 리오하 여행에서 놓치기 아까운 특권입니다.
미식의 도시 산 세바스티안, 핀초스 골목의 밤
리오하의 와인 성지를 뒤로하고 향하는 곳은 미식의 도시 산 세바스티안입니다. 한국 여행자들에게는 2003년 봉준호 감독이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받은 도시로도 기억되는 곳입니다. 산 세바스티안은 양쪽에 두 개의 산이 있는 구조로, 산악기차 푸니콜라를 타고 급사를 오르면 전망대가 나타납니다. 산 정상에서는 짙은 대서양과 초록빛 청록색 파도가 넘실대는 라 콘차 해변이 한눈에 펼쳐집니다. 이 풍경을 보는 순간, 산 세바스티안이 왜 스페인 왕족들의 휴가지이자 이베리아 반도에 숨겨진 휴양지로 불리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두 개의 멋진 해변을 옆으로 끼고 자리한 구시가지에 어둠이 내리면, 비로소 산 세바스티안의 진짜 매력이 시작됩니다. 바로 타파스 골목의 밤입니다. 스페인 사람들이 "타파스 먹으러 가자"고 말하는 것은 한국인이 "밥 한 끼 같이 먹자"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일상의 문화입니다. 타파스는 식사 전에 먹는 간식으로, 그 종류와 스타일은 지역마다 다양합니다.
산 세바스티안에서는 특히 핀초스가 유명합니다. 핀초스는 타파스의 한 종류로, 바게트 빵 위에 해산물과 육류 등을 얇게 썰어 올린 후 소스를 얹고 작은 꼬챙이, 즉 핀초로 고정한 형태입니다. 작은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먹어보면 굉장한 정성이 느껴지는 것이 핀초스의 진정한 매력입니다. 핀초스 몇 개면 주머니 얇은 여행자도 맛있게 먹고 마실 수 있어,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배낭 여행자에게도 안성맞춤입니다.
산 세바스티안의 타파스 골목에서는 자리를 옮겨 다니며 핀초스를 먹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손님이 워낙 많다 보니 접시가 금세 비워지고, 종업원들은 새 접시가 나올 때마다 손님에게 권유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특색 있는 핀초스를 골라 먹는 재미로 늦게까지 북적이는 이 골목은, 맛집 투어를 즐기는 여행자들로 언제나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현실적인 여행 팁으로, 핀초스 골목을 즐기기 가장 좋은 시간대는 현지 문화에 맞춰 저녁 8시 이후입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저녁 식사를 늦게 시작하는 문화가 있어, 오후 7시에서 9시 사이에 구시가지 골목이 가장 생동감 있게 살아납니다. 핀초스 한 개의 가격은 보통 2~4유로 수준이며, 음료와 함께 여러 바를 옮겨 다니는 방식으로 즐기면 1인당 15~25유로 내외로 충분히 포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유명한 바는 웨이팅이 생기므로, 서서 먹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 여행자라면 오히려 더 현지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스페인 북부는 리오하 와이너리의 건축미와 오크통 숙성의 깊이, 산 세바스티안 핀초스 골목의 생동감이 어우러진 입체적인 여행지입니다. 감성적 풍경뿐 아니라 와이너리 예약 방법, 핀초스 가격대 같은 현실적인 정보까지 함께 준비한다면, 이 여행은 기억 속에 훨씬 더 오래 남을 것입니다.
[출처]
영상 출처:건축에 취하고 와인에 빠진 스페인 여행 [걸어서세계속으로] KBS 200516 방송 / KBS 트래블-걸어서 세계속으로 : https://youtu.be/hNgbP9-ch0k?si=9e46_3jozLq9qnP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