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 최북단 카슈미르는 히말라야 끝자락에 자리한 지상 최고의 절경으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 이면에는 파키스탄과의 국경 분쟁, 테러의 긴장감, 종교적 갈등이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천상의 아름다움과 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공존하는 카슈미르의 진면목을 들여다봅니다.
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카슈미르
카슈미르는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동시에, 가장 복잡한 역사적 상처를 안고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주민의 대다수가 무슬림인 이곳은 1947년 인도 독립 이후 파키스탄과 세 차례나 국경 전쟁을 치렀습니다. 주도인 스리나가르에서는 지금도 1년에 한두 번씩 폭탄 테러가 발생하며, 시내 곳곳에는 무장한 경찰이 언제 생길지 모르는 테러에 대비해 삼엄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긴장감이 감도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시장터에는 서민들의 생동감 있는 일상이 펼쳐집니다. 정세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인들은 분쟁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피해를 당하는 이들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세가 안정되어 장사도 잘된다는 말에 안도감이 밀려옵니다. 북인도 특유의 주식인 로띠, 즉 밀가루를 반죽해 구워낸 빵과 함께 기름에 튀긴 뿌리 음식도 눈에 띕니다. 특히 소뚜껑보다 큰 뿌리 튀김은 이 지역만의 특색 있는 먹거리입니다.
스리나가르 시내에서 한 시간쯤 이동하면 파키스탄과의 국경지대에 다다릅니다. 이동하는 군용 차량에서는 이곳이 결코 평범한 관광지가 아님을 실감하게 됩니다. 국경지대에 위치한 산악마을 굴마르그는 최근에야 관광지로 개방된 곳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10여 분쯤 올라가면 히말라야의 장엄한 설산이 시야 가득 펼쳐집니다. 구루마르그를 넘어서면 곧 파키스탄령 카슈미르로 이어집니다. 겨울이면 스키장으로 변하는 이곳에는 인도에서는 보기 힘든 눈 덮인 설산을 보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습니다.
이 여행기에서 가장 묵직하게 다가오는 장면은 바로 이 분쟁과 평화의 극명한 대비입니다. 무장 경찰이 배치된 도심과 그 한편에서 로띠를 굽고 물건을 파는 서민들의 모습, 그리고 아이들의 천사 같은 표정은 보는 이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카슈미르 전통 복장을 한 아이의 표정이 천사의 모습이라 묘사되는 순간, 이 땅이 품고 있는 아픔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종교적 갈등과 국경 분쟁이라는 무거운 주제가 여행자의 시선에서 다소 간략하게 스쳐 지나가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럼에도 그 장면 하나하나는 카슈미르의 복합적인 현실을 충분히 전달해 줍니다.
달 호수와 무굴 정원이 빚어낸 절경
스리나가르의 심장부에 자리한 달 호수는 여의도의 2.5배에 달하는 광활한 호수입니다. 단순한 관광 명소를 넘어 이곳 주민들의 생활 중심지로서도 깊이 기능하는 공간입니다. 시카라라 불리는 작은 나무배를 타고 호수 안으로 들어서면 채 5분도 되지 않아 그림 같은 수상마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호수 위에 떠 있는 보트하우스는 단순한 숙박 시설이 아닙니다. 배 안으로 들어서면 널찍한 거실에 소파와 식탁이 갖춰져 있고, 긴 복도를 따라 네 개의 침실이 이어집니다. 하룻밤 숙박비가 한화 4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창밖의 풍광입니다. 달 호수에 비친 산과 하늘은 대자연이 주는 축복 그 자체라 할 만합니다. 신혼 여행 중인 한 커플이 보트하우스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는 모습은 대자연의 품에서 새 인생을 시작하는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됩니다.
달 호수 북쪽에는 무굴 시대에 조성된 왕실 전용 정원이 웅장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무굴 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이 정원은 분수와 온갖 꽃들로 장식되어 가꾸어진 자연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사진 찍기에 바쁘고, 자연 속에 묻힌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행복해 보입니다.
달 호수가 단순한 풍경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은, 이곳이 정치적 긴장과 일상적 삶이 동시에 흐르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수상마을 근처에는 마을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구멍가게가 자리하고,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각종 상점들이 수로 옆에 나란히 늘어서 있습니다. 시카라를 타고 조금만 나서면 원시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펼쳐지며, 달 호수에 비친 산과 하늘의 풍경은 어떤 작위적인 아름다움보다 깊은 감동을 줍니다. 이처럼 달 호수는 카슈미르 여행의 핵심이자, 이곳의 복잡한 현실을 가장 서정적으로 담아내는 공간입니다.
수상마을 사람들의 삶과 베풀고 비우는 철학
달 호수의 진짜 얼굴은 이른 새벽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동이 트기 무섭게 사람들이 배를 저어 어딘가로 향합니다. 바로 새벽에 잠깐 열리는 수상시장입니다. 배 안에는 각종 야채들이 가득 담겨 있고, 저울질을 하며 물건을 사고파느라 분주한 모습이 이어집니다. 조금 더 가지려고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은 어느 나라 시장에서나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인간적인 풍경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넓은 땅을 두고 왜 하필 물 위에서 장사를 하느냐는 의문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이 호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 자체에 담겨 있습니다. 시카라를 젓는 사공들의 마을에는 70여 가구가 모여 살고 있습니다. 위아래 층으로 방이 세 개인 작은 집에서 일곱 식구가 생활하는 모습은 소박하지만 정돈되어 있습니다. 선반 위엔 살림살이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아침 식사는 짜이 한 잔으로 시작됩니다.
집 밖으로 나서면 늪지를 이룬 수경 채소밭이 길게 뻗어 있습니다. 조각배에 몸을 싣고 채소밭을 가꾸는 모습은 이 수상마을만의 독특한 생활 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마을 사람들은 관광객을 태울 시카라 치장에도 공을 들이며, 넉넉하진 않아도 낯선 이에게 친절을 베풉니다. 시카라를 저어서 하루에 얼마나 버는지 물어볼 때, 돌아오는 미소와 소박한 대답은 물질적 풍요보다 더 큰 무언가를 전해 줍니다.
수상시장이 열리고 파장하는 짧은 시간 동안, 학교나 직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배를 움직입니다. 이 모든 장면은 여행자에게 베풀고 비우는 삶의 소중함을 가슴속 깊이 새기게 만듭니다. 카슈미르에는 신화 속 신을 닮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표현이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정치적 불안과 물질적 결핍 속에서도 일상을 꿋꿋이 이어가는 이들의 모습은, 진정한 여행이 무엇을 마주해야 하는지를 조용하지만 강하게 일러줍니다.
카슈미르는 분쟁과 평화, 달 호수의 절경과 수상마을의 소박한 삶이 하나의 땅 위에 뒤섞인 곳입니다. 종교와 분쟁, 여성 차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더 깊이 파고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베풀고 비우는 삶'으로 마무리되는 흐름은 이 여행 전체를 하나의 철학으로 묶어 줍니다. 천상의 아름다움과 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공존하는 카슈미르의 평화를 진심으로 바라게 됩니다.
[출처]
영상 출처: 인도여행 [걸어서세계속으로] KBS 111119 방송 / KBS 트래블-걸어서 세계속으로 ; https://youtu.be/Dan0V_imZm4?si=YPcuizv4X04I1O1s